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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10-20 02:12 조회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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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치료센터로 유명한 A 산부인과 병원은 아침부터 북새통이었다. 나란히 휴가를 쓰고 병원에 방문한 혜주와 주원은 손을 꼭 잡고 입구로 들어섰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혹시 문제가 있으면 어떠냐고, 둘이 살아도 충분히 깨 볶고 살 수 있다며 주원이 다독였다. 하지만 혜주는 싱숭생숭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면 어쩌지? 엄마도 나를 쉽게 가진 게 아니라고 했는데…….’ 예전에 수철에게 듣기론 결혼 후 혜주가 생길 때까지 4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둘째 생각이 간절했지만 몇 년이나 생기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살았다고. 그러니 혜주가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배가 잔뜩 부른 임신부와 불안한 듯 아랫배를 어루만지는 초기 임신부를 보니 괜히 기분이 씁쓸했다. ‘나도 임신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방법은 있겠지. 그럴 거야.’ “오혜주 님, 들어오세요!” 한 시간 정도 대기 후 간호사가 그녀를 불렀다. 손바닥에 배어난 땀이 긴장해서인지, 내내 주원에게 잡혀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혜주는 바지에 손을 쓱 한 번 닦고 일어섰다. “네, 갈게요.” 주원과 혜주는 나란히 진료실로 들어섰다. 걱정 말라는 듯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다고 내내 다독여준 덕에 불안함은 조금 가셨지만, 그래도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으면 했다. “우선 검진 문항을 보니 두 분 다 건강하시고. 따로 복용하는 약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관계는 주기적으로 잘하고 계십니까?” 대답은 주원이 했다. “매일 합니다.” 의사가 조금 움찔하는 게 보였다. “아, 매일.” 5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의사가 안경을 콧잔등으로 내려 주원을 흘깃 보았다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통상적으로 피임을 시행하지 않은 부부가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1년 이내에 임신하지 못한 경우를 난임이라고 해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치료할 수 있는 케이스이니 너무 걱정 마시고.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등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으니 조급할 것도 없고.” 그가 간호사를 손짓했다. “우선은 난임의 원인이 뭔지부터 알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두 분 다 검사부터 받읍시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주원은 남성 검사실로, 혜주는 여성 검사실로 향했다. 여러 가지 기계가 즐비한 여성 검사실과 달리 남성 검사실은 퍽 단조로웠다. 커다란 TV와 깜깜한 조명이 전부였으니. “여기 리모콘 누르시면 영상 나오거든요. 그거 보시고 정액 채취해 주시고요. 채취한 정액은 여기 담아주시면 됩니다.” “네.” 주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소파에 걸터앉았다. 난임병원에서 남자가 해야 할 일이 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명 ‘비밀의 방’에서 잠깐의 유희를 즐기고 나오면 되는 거다. 그에 반해 여자가 받게 되는 검사는 제법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했다. 주원은 벌써부터 혜주가 걱정이었다. ‘우리 혜주 잘하고 있나 모르겠네.’ 주원은 리모콘을 멀찍이 밀어두고 휴대폰을 꺼냈다. “혜주 얼굴이나 봐야겠다.” 그는 휴대폰으로 찍어둔 혜주의 영상을 재생하며 바지 안에 손을 넣었다. 애초에 야동 따위로 제 정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이미 그걸로는 불가능해졌다고 해야 맞겠지. 혜주가 아닌 다른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 흥분이 될 리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주원은 며칠 전부터 특별한 영상을 준비했다. 혜주가 단독으로 나온 휴대폰 동영상을 짜깁기해 약 십 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홀딱 벗겨놓고 찍고 싶었지만 휴대폰 정보 유출 문제도 있고 해서 애초에 접었다. 대신 그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엄선했다. 혜주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영상, 뭐라고 조잘대며 삐진 표정을 짓는 영상,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는 영상, 홑이불만 달랑 덮고 침대에 잠들어 있는 영상……. 살짝 벌어진 입술과 그를 향해 흔드는 하얀 손가락, 하늘하늘한 실크 블라우스 안으로 슬쩍 비치는 보드라운 속살을 감상하며 주원은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자극적인 건지. “……돌겠네, 이거.”     상상은 더운 열기가 되어 혈관으로 흘렀다. 주원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당장 뛰어나가 그녀를 안고 싶다. 가장 아늑한 곳에서 너를 품고, 숨을 느끼고 싶어.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처럼 근육이 팽창했다. 미치겠다. 미치겠어. 주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직이 혜주의 이름을 불렀다. “혜주야…….” 귓가에 어른거리는 고운 음성을 떠올리니 호흡이 가빠졌다. 탄탄한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호흡이 뚝 끊겼다. “후우…….” 주원은 반쯤 찬 채취 컵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야동도 없이 이걸 해내다니. 장하다, 강주원. 괜히 뿌듯해서 입가가 씰룩거렸다. * 모든 검사가 끝나고 다시 진료 순서가 되었다. 중년 의사가 콧잔등까지 내려온 안경을 쓸어올리며 주원과 혜주를 번갈아 보았다. “에…… 검사 결과가 다 나왔는데요.” 모니터를 봤다가 검사결과지를 봤다가 시선이 분주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저럴 리가 없을 텐데. 혜주의 심장이 철렁했다. “우선 오혜주 님 검사 결과부터 알려드리자면, 양쪽 나팔관 모두 조영제가 흐르는 걸 보니 이상 없고요. 자궁도 건강하고 웬만한 항체도 다 있네요. 난소기능 수치도 좋고 다 좋아요. 그런데.” 의사의 시선이 주원을 향했다. 넋 놓고 있다가 기습을 당한 주원이 조금 움찔했다. 뭐지? 왜 나를 쳐다보는데? “강주원 님의 경우, 에…… 일단 모니터를 한 번 보시죠.” 그가 모니터를 돌려 둥근 원 두 개가 떠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게 채취한 정자의 모습이란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왼쪽이 정상 남성의 정자이고요. 오른쪽이 강주원 씨 정자입니다. 활동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 보이시죠?” “!”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건강한 상태 역시 아닙니다. 최근 무리를 하셨거나 과도하게 피로가 쌓인 경우, 혹은 음주나 흡연이 과할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는데요.” 뒷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해진 주원이 말없이 눈만 끔뻑였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신체 건강한 걸로 따지면 대한민국 0.1퍼센트에 해당한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물론 그 외의 것들도 최상위급에 랭크하겠지만 정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다. “제 정자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요새 운동을 과하게 하긴 했는데 그것 때문은 아닐까요?” 실낱같은 희망으로 물은 말에 의사가 가차 없이 대꾸했다. “단순히 운동 때문만은 아닌 거 같고요. 문제가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쉽게 말해 이게 맥아리가 없는 상태란 건데.” 자존심이 와락 구겨졌다. 주원은 울고 싶어졌다. “성관계를 매일 한다고 하셨죠?” “네.” “어제도 하셨고요.” “네.” “어쩌면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개체 수의 문제는 아니라서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정을 너무 빈번하게 하는 경우 묽은 정액이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자주 하다 보면 질이 좋고 충분한 양의 정액을 생산할 시간이 부족해진단 거죠.” 시무룩해 있던 주원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그러니까 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잦은 관계의 문제라는 거죠?” “난임 문제는 딱 이게 원인이다, 라고 규정 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검사상 정자의 개체 수는 충분하기 때문에 일단 몇 가지 원인을 추정한 후 하나씩 제거해가는 게 원칙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남자로서의 제 능력엔 문제가 없다는 거잖습니까.” “그건 확언할 수 없습니다. 성관계 횟수를 줄여보고도 정자의 상태에 변함이 없으면 다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하고요.” “아니, 선생님.” 어떻게든 ‘당신 정자는 멀쩡하다’는 소리를 들으려 혈안이 된 주원의 옆구리를 혜주가 푹 찔렀다. “창피하니까 그만 해요.” 주원이 벌게진 얼굴로 입술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혜주가 엄하게 고개를 젓자 처마 밑 강아지처럼 푹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 ‘와…… 강주원 진짜.’ 혜주는 자꾸 비식거리는 입꼬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맥아리 없다는 소릴 들어서 어떡해. 이건 완전 치명상이네, 치명상.’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우울한 주원과 달리 혜주의 기분은 무척 홀가분했다. 벼르고 벼르던 검사도 받았고, 둘 모두 큰 문제는 없다고 했고, 특히나 자신은 완벽할 정도로 건강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하니 당장 오늘이라도 아기천사가 찾아와줄 것 같았다. “오빠, 너무 상심하지 마요. 의사 선생님이 큰 문제 아니라잖아요.” 혜주가 웃음을 참으며 주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는데 왜 이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드높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단단히 난 건 알겠는데, 병원에서도 괜찮다는 걸 저렇게 좌절할 일인가. 커다란 어깨가 축 처진 걸 보니 꽉 껴안아 주고 싶었다. “맥아리가 없다잖아…….” “사람이 피곤하면 입술도 트고 몸살도 나고 하잖아요. 오빠가 요새 피곤하긴 했지.” “하나도 위로 안 돼.” “위로 아니고 팩트만 얘기하는 건데? 생각해 봐요. 오빠 요새 매일 여섯 시에 일어나죠. 눈 뜨자마자 헬스하고 바로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고, 집 돌아오면 나랑 놀아주느라 바쁘잖아. 하루에 다섯 시간도 못 자는데 몸이 버티겠어요?” “하아.” “가만히 앉아서 쉬어본 적도 없잖아. 그러니까 탈이 나는 게 당연하죠.” 주원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한숨만 푹푹 쉬다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특히 우리 집엔 절대 안 돼. 사흘 밤낮은 놀려먹을 거라고.” “헉.” 혜주는 급히 들숨을 마셨다. 주원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설마 벌써 말했어?” “그게요…….” “아니라고 말해.” 엄포를 놓긴 했지만 혜주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스타베팅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어머님한테만 살짝 말씀드리긴 했는데.” 주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망. 했. 다. 맨틀을 부수고 가라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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